BCE 544년 아난다와 마하까샤빠의 주도로 제1차 결집이 이루어졌다.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가 후원하였으며, 라자가하 외곽의 삿타판니 굴(칠엽굴)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모여 진행되었다. 빨리율장 쭐라왁가(Vinaya Pitaka)에 이 역사적 모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결집의 계기는 수밧다 비구의 발언이었다. 그가 "존경하는 분들이여,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부처님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이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마하까샤빠는 담마와 율장을 보존하기 위해 결집을 결심했다.
회의에서 마하까샤빠는 먼저 율장에 정통한 우팔리에게 계율의 세부사항을 질문했고, 그의 답변이 대중의 승인을 받아 율장이 공식 확립되었다. 이어서 담마에 정통한 아난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질문했다. 이때 처음으로 '여시아문(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역사적인 모임은 500명의 아라한이 참석했다 하여 '판차사티카'라고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