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중흥주선교양종호은 당대선사행적비
스님의 이름은 문성이고, 본래 성씨는 밀양 박씨인데, 호은은 스님 의 법호다. 경술년(1850년) 9월 관음재일에 태어나셨는데, 의지가 남다르고 여느 사람을 뛰어넘었다. ■■16살 때 용문사의 경허능언 장로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출가를 권유 받아 이에 머리를 깎고 경허 스님을 스승으로 하여 근우 필기 스님■■에게서 수계하였다. 비가 올 때 죽순이 올라오는 꿈을 꾸고 느낌이 있어 법제자들을 거두고 영남과 호남, 서북 지역의 여러 명찰을 주유하면서 교종과 선종의 대덕들을 두루 찾아뵙고 반 년 동안 널리 배웠다.■■ 스승의 자리 에 올라 법계를 더하여 말씀하셔서 종지를 두루 알렸고, 금강계단을 창건하여 정맥을 지으셨다. 남북의 대장경을 구입하여 후세 공부하 는 사람들의 길을 여셨는데, 특히 화엄■■하셨으니, 한 글자도 빠짐이 없었다.
스님은 근세 스님의 한 분으로, 우리 동방 불교의 부흥에는 실로 스 님의 힘이 커서 포교할 수 있었다. 스님은 봄에 ■■군에 대화정선 원을 경영하셨는데, 병들고 ■■하셔도 입으로 무상대열반을 낭송하 시면서 원만하고 밝게 입적하셨다. ■■ 스스로 <임종게>를 지어 노래하기를, “이 ■■은 어떠한가?” 하는 뜻이었다. 자성이 청정하여 원만하게 입적하시려는데, 한참 지난 뒤에 다시 “이것은 무엇인가?” 라 말씀하시고 마침내 입적하셨다. 그때가 무오년(1918년) 정월 초 사흘 미시(오후 1시-3시 사이)였다. 세수 69세였고, 법맥을 이으신 지 44해였다.
이날 저녁 한 줄기 금빛이 선실을 두루 감쌌는데, 서쪽 하늘로 뻗어 가는 것이 엿새 밤 동안 이어졌다. 마치 ■■경장에 영험한 구슬이 ■■했고, 사리는 상서롭게 빛나 해처럼 반짝였다. 다음 해 1월 3일 밤에 전■경장에서 빛을 발하셨다. 같은 해 2월 21일 오시(낮 11시-1 시 사이) 구례군 화엄사에 탑을 세웠다. 그날 밤에도 또 빛을 발하니 오호라! 기이하도다. ■화하심의 오묘함이 이와 같도다. 명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동방으로 오신 뒤스님께서 바른 법맥을 이으셨네.사리로 세 과가 나왔는데
이레 밤 동안 빛을 발하였네.
몸은 멸했어도 넋은 영원하리니고요해졌지만 고요함이 아니로다.오묘해라, 스님의 경지를 알겠으니이를 돌에 새겨 전하노라. 세존응화 2946년(1919년) 기미년 8월 10일■산산인 김영두가 삼가 짓다.
그 때 주지는 박선용 김삼선 김응준■■ 자 박동진 강상전 박재오
번역,/원문_ 임종욱(2023) 율사이자 화승이었던 호은 문성의 생애와 업적, 문학사학철학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