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印寺大香爐殿重建記 (朴漢永 撰)해인의 광명 속에 겹겹이 펼처진 세상(刹海)에 인드라망(帝網)이 드러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니, 마치 고운 비단을 펼쳐놓은 것과 같네. 생각컨대 가야산에서 전각을 수리하고 집을 다시 지음도 또한 미묘한 빛의 교차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리라.(나) 한영(漢永)이 근래 제주도(漢東)에서 출발하여 여름을 보내기 위해 청암사(靑嵒)를 거쳐 해인사를 찾아가 주지인 고경상인(古鏡上人)을 만났다. 고경상인은 古雨中人也 달을 가리키며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며칠을 머물렀다.고경스님이 집 짓는 일에 대해 말하기를,"절의 경전을 모신 전각과 법당은 웅장하게 다시 열렸으나, 오직 향로전과 선원의 공양간만이 매우 누추하고 좁아서 대중을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전부터 주지큰스님들이 새로 확장하고자 하여 자재를 준비해두었으나, 다른 일로 인해 이루지 못한 채 홀연히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임신년(1932) 봄에 정성을 다해 판전(板殿) 안에 천일기도 법단을 설치하여 3년간 수행한 후 회향하니, 때는 을해년(1935) 3월 15일이었습니다. 절의 대중들이 모두 기뻐하며 돈을 모아 크게 짓기로 하였다. 그해 겨울 11월에 나무를 베고, 이듬해 병자년(1936) 정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윤3월에 상량식을 올리고, 지금 6월에 낙성한 전각이 하나의 건물로 완성되었습니다.丁자형으로 모두 33칸이며, 총 공사비는 5천냥이 들었습니다. 전각의 용도는 대적광전의 봉향소 퇴설선원의 향적당입니다. 비록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마침 나를 찾아왔으니, 이를 기록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내가 이 전각을 살펴보니, 장경각과 대적광전 두 전각사이의 왼쪽에 위치하고 퇴설선당 앞에 있어서, 숲과 시냇물이 기막히게 어우러지고 종소리가 아침저녁으로 들려온다. 맑은 도와 날아오르는 샘물이 통하고, 웅장하게 울리는 처마 가까이에 남산의 솔바람과 푸른 안개가 떨어져 들어와 선승들의 발우와 스승의 옷자락을 적신다. 고요하고 우아한 경계에 잠겨 있으니, 옛날 고운 최치원 등이 신선들과 다리를 건너며 서로 웃던 모습을 함께할 수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다.지금 고경상인이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고경(古鏡)을 다시 갈고 닦아 날로 새로워지니, 점점 밝은 빛을 얻어 정념을 이루는 광명이 이 전각의 낙성과 함께 비로소 열림이 의심없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마음을 쉬고 생각을 거두어 비로자나불의 화장장엄의 바다(藏海)에서 해인(海印)이 발하는 빛을 다시 보리라. 이에 이를 기록하노라.불기 2963년 병자(1936) 6월 9일영호사문 한영 근찬감독 겸 화주경성덕률 번역_DB